겨울 설산 한라산 윗세오름 등산
1월 초 갑자기 주어진 평일 이틀의 휴가를 어떻게 하면 알차게 쓸까 고민하다가 몇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한라산 등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에 잡힌 휴가여서 백록담 코스는 예약조차 할 수 없었고, 검색을 하다 윗세오름은 예약 없이 초보자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급하게 1박 2일 제주도 여행 일정을 잡았습니다. 사실 1박 2일로 제주도를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알차고 무리 없이 다녀와서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일이라 숙소, 렌트, 비행기가 너무 저렴하더라고요. 일단 이번 여행의 메인은 한라산 등산이었기에 며칠 동안 열심히 등산 준비물을 챙기고 후기도 읽어보며 배낭 하나 메고 제주도로 출발했습니다.
1박 2일 제주도 여행 첫날 요약
- 대전 06:05 → 청주공항 07:01 무궁화기차 타고 청주공항 도착
- 청주(CJJ) 08:00 → 제주(CJU) 09:05 에어로케이항공으로 제주도 도착
- '오쉐어'에서 등산 장비 대여 후 택시 타고 10:15 어리목매표소 도착
- 10:30 등산 시작 → 오후 1:00 윗세오름 정상 도착 (편도 약 2시간 반)
- 40분 정도 휴식 후 영실 코스로 하산하여 오후 4:00 영실코스 입구 버스정류장 도착
- 버스 타고 렌터카 업체에서 렌터카 수령 후 숙소 도착
대전역에서 청주공항 기차역까진 무궁화호로 약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청주공항역에 도착하면 도보로 한 5~10분 정도만 걸으면 청주공항에 도착합니다. 하루에 10번 정도로 기차 배차 시간이 많이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비행기 시간만 잘 맞출 수 있다면 단돈 3,900원으로 대전에서 청주공항까지 편하게 갈 수 있어 좋은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8시 비행기였는데 기차역에 7시에 도착해도 여유 있게 수속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저희는 캐리어도 없이 배낭하나 메고 간 거여서 비행기 탈 때랑 나올 때 아주 빠르고 편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영실과 어리목 코스 모두 낮 12시부터는 입산을 제한하고 왕복 5시간 정도 걸리기에 제주도 도착 당일에 한라산 등산을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차 없이는 이동 시간이 매우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렌터카를 첫날 오전에 미리 빌려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만큼 한라산 출발 일정이 늦어질 것 같고 등산하는 데 렌터카는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등산을 하고 하산하는 길에 빌리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개인적으로 매우 잘한 선택이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영실과 어리목코스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렌터카를 늦게 빌리는 것도 추천드리고 싶네요.
등산 장비 대여
저희는 9시에 도착하자마자 제주공항 명물 귤트리만 빠르게 구경하고, 공항 바로 근처에 위치한 오쉐어에서(공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 등산 장비를 대여했습니다. 동생이랑 저 둘 다 등산엔 초보라서 겨울 산행에 가장 중요한 아이젠과 등산스틱, 그리고 등산화 1개를 대여했고, 당일에 즉석으로 전투식량까지 구입했습니다. 가기 전에 등산용품을 새로 살까도 생각했는데 일단은 일정이 급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장비를 빌릴 수 있어서 대여를 선택했습니다. 오쉐어를 선택한 건 단순히 공항에서 도보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장비도 깔끔하고 이용하기도 편해서 다음에도 또 이용할만한 곳이었습니다.
- 한라산 겨울 산행 시 안전을 위해 아이젠은 필수. 저희가 갈 땐 어리목매표소 입구에서 아이젠 없는 등산객은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장비는 미리 인터넷으로 며칠 전에 예약해서 빠르게 대여가 가능했습니다. 심지어 짐 보관도 가능해서 등산에 필요 없는 짐들은 맡기고 나왔습니다. 장비를 대여한 후 택시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어리목매표소에 도착했는데 택시를 타니 매표소 바로 옆까지 차로 갈 수 있어서 아주 편했습니다. 차 타고 갈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 눈이 다 녹아있어서 설산을 못 보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어리목매표소 입구부터는 눈이 정말 많이 쌓여 있어서 한창 다 녹기 전에 와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초보 등산러의 한라산 윗세오름 설산 등산 이야기
등린이 둘이 등산스틱을 조절할 줄 몰라서 입구에서 낑낑대다가 겨우겨우 준비를 다 끝마치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입구부터 한눈에 보이는 눈꽃 풍경이 얼마나 이쁘던지, 몇 걸음만 떼었는데도 예쁜 풍경이 계속 눈앞에 펼쳐져서 처음 한동안은 사진 찍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네요.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죠. 다행이었던 건 아이젠을 신으니 오히려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등산하기가 훨씬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흙밭을 올라갔으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리목코스는 거의 처음부터 어려움코스이기 때문에 경사가 높아 초반에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체력 좋은 동생 덕분에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열심히 올라갔네요.
약 2.4km의 어려움 코스를 지나고 보통 코스에 진입하면 주변을 감싸고 있던 나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맑은 하늘과 평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눈앞에는 계속 감탄만 하게 되는 설산 풍경이 펼쳐지고, (이때부턴 선글라스가 필수인데, 하얀 눈 때문에 눈이 엄청 부십니다.) 뒤를 돌아보니 발아래로 구름들과 제주의 여러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맛에 등산을 하는구나 싶었더라고요.
평지가 나오면 다 올라온 줄 알았지만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는 약 1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했습니다. 풍경이 정말 예쁘지만 이때부터 슬슬 체력의 한계와 더불어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중간중간 그냥 돗자리 펴놓고 앉아서 식사하는 분들도 보이고 걸어가는 제가 너무 지쳐 보였는지 이미 정상에 갔다 하산하시는 분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위에는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응원도 해주셨습니다.
이 설산 풍경을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날씨가 풀려서 눈이 조금씩 녹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예뻤던 눈꽃 풍경을 실컷 보면서 몇 년 동안 다짐만 해왔던 한라산 등산을 경험하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2시간 반에 걸쳐 드디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고, 대피소가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쉼터와 화장실 모두 아주 깨끗했습니다.(여기까지 온 내 자신 칭찬해.)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으로 더 가면 백록담 측면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남벽분기점 입산제한시간이 1시였고 이미 저희의 체력은 바닥이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으로는 육개장과 처음 먹어본 전투식량 라면애밥을 먹었습니다. 찬물만 넣으면 보글보글 끓어서 라면과 밥을 동시에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생수를 좀 넉넉히 챙겨서 이것만 1인 1개씩 사 와서 먹어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참고로 대피소에는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곳이나 쓰레기통이 따로 없으니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는 잘 챙겨서 다시 갖고 내려와야 합니다. (등산로 입구에 분리수거장이 있음)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도착 기념 인증샷도 야무지게 찍고 30분 정도 쉬다가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어차피 대중교통을 이용할 거라서 4시 30분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영실코스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제주 시내 쪽으로 가는 버스는 영실에서 어리목으로 가기 때문에 영실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면 자칫 어리목에서는 버스를 못 탈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택시도 잘 안 잡힐 수도 있다고 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버스 시간을 잘 맞춰야 할 듯싶습니다.
영실코스는 어리목코스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곳곳에 포토존도 있고 특히 영실코스에서는 기암절벽을 볼 수가 있어 어리목보다는 멋진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영실코스의 단점은 계단이 너무 많아서 체력은 훨씬 더 소모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실코스로 내려오는 길은 눈이 녹고 있어서 길이 엄청 미끄러워서 옆에 있는 밧줄을 잡고 간신히 내려와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거의 앉아서 내려갈 정도였으니 애매하게 눈이 녹을 때는 등산할 때 상당히 조심해야 할 듯싶었습니다.
등산을 마치며
후들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오후 4시 드디어 영실매표소 버스정류장까지 하산을 완료했습니다. 백록담을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윗세오름도 이렇게 멋진 설산 풍경과 초보자도 예약 없이 쉽게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어서 매년 이 풍경을 보러 와야겠다 다짐했습니다.(제주도에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거의 일주일 전에 급하게 잡은 일정치곤 너무나 만족스럽게 다녀온 한라산이었고, 우연히 마주친 어떤 등산객은 서울에 사시는 데 한라산이 너무 좋아서 자주 당일치기로도 등산하러 오신다며 직접 와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다녀오고 나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등산을 해보니 이제 좀 더 자주 등산을 다녀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동생이랑 등산을 하면서도 공기가 너무 맑다, 풍경이 진짜 너무 예쁘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세상에 멋있는 건 많고 그래서 2024년에는 더 부지런히 보러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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